인어
수조는 학교 입구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일층에서 서성거리는 애들은 없다시피 했다. 나 같은 외톨이 감성에 찌든 꼬마나, 그런 꼬마를 신경 써주고 수조에도 가끔 관심을 기울이는 라이너 선생님 같은 사람 빼고는.
수조. 그건 거대한 흉물이었다. 우드는 그게 일층에 있는 이유는 딱 하나일거라고 했다. "예전에 사막에 있는 어떤 도시에 있는 화려한 건물에서, 오층인가에 위치하고 있던 중동식 목욕탕이 터져서,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물에 빠져 죽었대.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익사해서 죽은거지." 즉, 물의 무게 때문에 지탱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조피아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얘기를 해줬다. "청소만 제대로 하면 꽤 멋질걸. 희귀한 물고기가 들어있는 모양이던데." 가비가 대답했다. "라이너가 학생일 때는 볼만했대."
"그건 너무 옛날 아니냐?"
가비가 키득거렸다.
"4년 밖에 안 지났어."
이끼가 가득 낀 것이 밖에서는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유리창을 문질러 보았지만 먼지만이 쓸릴 뿐, 물 속의 거무스름한 때와 이끼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물들은 사라지지를 않았다. 아마 물을 한번 싹 빼서 제대로 갈아줘야 하겠지. 조피아의 말대로 안에 희귀한 물고기가 살아있기는 할까? 싶어 눈을 찡그리고 안을 들여다보면, 조그마한 물고기떼들이 헤엄쳐 가는 것이 보이긴 했다. 이런 더러운 곳에서 잘도 살아남는다 싶었지만 그닥 귀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학명과 물고기의 그림, 또 설명이 수조의 한 구석에 붙어 있기는 했지만 거기에 설명된 물고기들이 지금 수조 속을 떠돌고 있는 것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문으로는 아주 희귀한, 지금으로는 구할 수도 없는 것도 하나 들어 있다고는 했다. 이년 전에 급사한 이사장의 취미로 만들었다고 했나 뭐랬나. 희귀한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던 그는 이사장실에 온갖 동물들의 박제와 학교 입구의 흉물스러운 수조를 남긴채, 어느날 밤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푹 쓰러져 죽은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의 입 안에는 수입 금지된 열대어가 박혀 있었다나.
나는 그런 괴담을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수조에는 꽤 관심이 있었다. 가비에게는 비밀이었지만, 가비의 자랑인 라이너 선생님, 그러니까 라이너 선생님은 가비의 사촌오빠인데, 아무튼, 라이너 선생님이 수조의 유리에 대고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는 모습을 본 후로 말이다. 그리고 수조 안의 수초들이 일제히, 마치 안에서 거대한 고래라도 헤엄쳐 나오는 것처럼 술렁거리는 모습을 본 후로. 그 모습은 꼭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딱 그날 모스 부호에 대해 배웠다. 톡, 톡, 톡, 톡. A, B, C, D, E, F, G… 다음날도 나는 우연히 수조 앞에 있는 라이너 선생님을 보았다. 톡. E. 톡. R. 톡. E. 톡. N. 에렌.
에렌?
라이너 선생님은 꼭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건 다 추측이었다. 그후로 한동안 비위가 상해가는 걸 무릅써가며, 점심시간마다 수조 앞에서 억지로 도시락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도 수조를 들여다보는 등의 일을 해봤지만, 뭐 특별한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너 또 이상한 거에 꽂혔구나.” 하는 가비의 말과, 가비에게 뭔가 주워들은 게 분명한 라이너 선생님의 전담 코칭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요새 뭐 고민이라도 있니, 팔코?”
그렇게 묻는 라이너 선생님의 앞에서 수조 앞에서 뭘하고 계셨나요, 하기에는, 그러니까… 나도 부끄러움을 알았다. 내 어이없는 상상은 라이너 선생님을 통해 가비에게 흘러갈테고, 가비는 입을 다물 줄을 모르니까 조피아와 우드에게도 바로 퍼져버리겠지. 그러면 우드는 ‘알아, 팔코. 그럴 때구나.’ 같은 소리를 할거고, 조피아는 모르는 척 피식거릴거고, 가비는 대놓고 날 비웃을 거다.
“그냥, 저기 수조가 요새 궁금해서요. 뭐 아는 거라도 있으세요?”
그래서 나는 빙 둘러서 묻는 걸 선택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이너 선생님은 한동안 수조를 바라보다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물고기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니?”
“네?”
“아니, 흔히들 하는 얘기이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지. 어떤 동물 애호가들은,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더구나. 개, 고양이, 그런 것들 말이다. 그렇다면 팔코, 물고기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물 속을 그냥 헤엄치고 다니는 비늘투성이 것들이, 생각은 할 줄 알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자, 라이너 선생님은 헛기침을 하고 자신이 아는 수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별 거 없는 이야기였다. 라이너 선생님이 아직 학생이던 시절, 이사장의 강요로 수조를 설치하는 큰 공사가 있었고, 한동안은 꽤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였지만, 어느 날인가 학생의 자살이 일어났는데, 한쪽 손목이 없어져서 소란이 일었는데 수조 안에서 반짝이는 비늘의 희귀한 물고기들이 살을 다 뜯어먹어서 뼈밖에 남지 않은 손목이 발견되었고, 그후로 방치되다시피 했다는 거였다.
“지금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
“아니란다.”
“터무니없는 얘기 같은데요.”
“그러니까 잘 안 하는 얘기지. 학교 신문에도 실렸던 얘기니까, 궁금하면 찾아보렴.”
참 이상하고, 어째 속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일단은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 수조는 왜 안 치우는 건가요?” “설치 공사는 쉬울지 몰라도 이걸 빼내는 건 어려울 거거든. 아직 저 안에 이 학교 건물보다 비싼 물고기가 살아있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에 허겁지겁 뛰어가는 중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 라이너 선생님은 또다시 수조를 보고 있었다. 라이너 선생님이 하얀 손을 들어 유리창을 네번 두들겼다. 뭐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에 – 렌. 또 수초가 술렁거리고, 언뜻 수초들 사이로 검은색의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이 비친 것도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